이태호 주석/럭크만을 넘어서

베드로후서 3장은 우주적 홍수인가 노아의 홍수인가?

이태호 형제입니다 2025. 4. 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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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3-7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 함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것과,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 그러나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으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니라.

럭크만 목사님은 이 구절을 창세기 1:2의 우주적 홍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신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는 노아의 홍수이며 우주적 홍수라고 주장할 경우 여러 문제가 생김을 알 수 있다. 먼저 우주적 홍수라고  주장할 시 생기는 문제에 대해 알아보자.

 

1. 하늘들

 

베드로후서 3:5
이는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 함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것과,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고 증거한다. 여기서 하늘들에 주목해보자.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이때는 하늘들이 아니었고 하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하나의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세 부분으로 나누셨는데 이는 창세기 2:1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창세기 2:1
그리하여 하늘들과 땅이 완성되었고, 하늘들의 모든 군상들도 그러하니라.

 

적어도 물로 창공을 나누신 창세기 1:6-8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6-8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들 가운데 창공이 있으라. 창공으로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게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창공을 만드시고 창공 위에 있는 물들에서 창공 아래 있는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창공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더라.

이에 대해 말씀보존학회 백문백답에 같은 질문이 있지만 사실상 성경적 답변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정말로 창세기 1:1에서 말씀하신 것이 창조에 관한 일반적인 진술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히브리어 샤마임은 복수의 하늘들인데 킹제임스성경에서는 분명히 단수로 표기하였다. 그것은 정확한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하나의 하늘을 창조하셨고 나중에 세 부분으로 나누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요한계시록에서는 다시 하늘이 창조될 때는 다시 단수로 등장하게 된다. 그때는 하늘들이라는 구분이 없게 된다.

 

즉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3:5에서 말하는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고' 라는 표현은 적어도 창세기 1:6 이후이기에 창세기 1:2의 우주적 홍수가 될 수 없다.

 

2.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베드로후서 3:3-4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리니

 

조롱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조상들이 언제 잠들었는가? 영적으로는 아담의 죽음, 육신적으로는 아벨의 죽음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아벨은 직계 조상이 아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부정하며 심판 같은 것은 없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없었던 심판은 시기상 우주적 홍수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문맥적으로도 노아의 홍수에 가까움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베드로는 주님의 약속에 대해 우리에 대해 오래 참으신다는 것을 말한다. 베드로후서 3장의 모든 문맥을 보아 앞으로 있을 심판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과거 심판이 있었다, 곧 있을 심판을 준비하라는 베드로가 갑자기 인간과 상관 없는 우주적 홍수를 들먹이리라고 보여지지 않는다. 그것을 증명한 것이 베드로후서 3:9이다. 이 심판은 우리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이 말이 조롱하는 자들의 발언이기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다음 증거를 주목해보자.

 

3. 베드로의 예언

 

베드로후서 3:3-4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리니

사실 이 말은 실제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아닌 앞으로 말할 것이라는 베드로의 예언이다.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것을 믿는다면 현재 재림을 부정하고 조상들이 잠든 이후의 심판이 없었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만일 여기서 부정당하는 심판이 우주적 홍수라면 애초에 이 말은 앞서 보았듯 조상들이 잠든 이래라는 시점의 특정으로 인하여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으며 이 경우 베드로의 예언은 틀린 것이 되어 버린다. 이는 성경의 예언이 틀려 버리는 경우로 이어진다. 

 

또한 앞선 경우를 무시하고 우주적 홍수일 경우 조롱하는 자들은 창세기 1:2의 우주적 홍수를 믿는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창세기 1:2의 우주적 홍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조상들이 잠들기 전에 우주적 홍수가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단순히 조롱하는 자들의 말 뿐만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이며 이 심판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성경에 예언에 문제가 생김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저것이 노아의 홍수라고 하면 실제로 현재 저런 사람들이 있는가?

1. 이스라엘 핀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 & 닐 애셔 실버먼(Neil A. Silberman)

대표 저서
《The Bible Unearthed: Archaeology’s New Vision of Ancient Israel and the Origin of Its Sacred Texts》(2001; 국내 번역본 《발굴된 성서》 등으로 소개됨)

주장 요지
“성서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다른 홍수 설화(길가메시 서사, 아트라하시스 신화 등)와 매우 유사하며, 이를 차용·재해석하여 이스라엘의 신학적 목적에 맞게 편집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고학적으로 전 지구적 대홍수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으며, ‘온 세상’이 물로 잠겼다는 서사 자체는 고대인들의 세계관과 문학적 장르를 반영한 신화적 이야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 존 월튼(John H. Walton) & 트렘퍼 롱맨 3세(Tremper Longman III)

대표 저서
《The Lost World of the Flood: Mythology, Theology, and the Deluge Debate》(2018)

주장 요지
“창세기의 대홍수 이야기는 당시 고대 근동의 세계관 속에서 형성된 문학·신학적 텍스트이다. ‘전 지구적 홍수’라는 현대 과학적·지질학적 의미의 사건이 아니라, ‘고대인이 인식하던 세상 전체’를 다루는 상징적 표현이다. 노아의 홍수를 문자 그대로 역사·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님-인간-창조세계’의 관계와 심판·구원의 신학을 드러내는 서사로 해석해야 한다.”

3. 피터 엔즈(Peter Enns)

대표 저작
《Inspiration and Incarnation: Evangelicals and the Problem of the Old Testament》(2005), 《The Evolution of Adam》(2012) 등

주장 요지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고대 근동 문헌 전승(메소포타미아 홍수 설화)의 흔적을 강하게 보여준다. 이것을 문자적·사실적 역사로만 보려 하면, 성서가 형성된 문화적·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게 된다. ‘성서가 가르치는 핵심 신학’과 ‘고대 문헌으로서의 형식·장르’를 구분하여 해석해야 하며,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 사건’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신학적 메시지를 담은 서사로 봐야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노아의 홍수 사건을 실제 역사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드로의 예언이 노아의 홍수라면 그것은 이미 성취되었다. 

 

4. 베드로후서 2장의 옛 세상

 

베드로후서 2:5
또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셨으나 여덟 번째 사람인 의의 전파자 노아는 구원하시고 경건치 않은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느니라.

 

이미 베드로는 노아의 홍수를 언급하며 이미 옛 세상의 용례를 밝히고 있다.

 

베드로후서 3:6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

세상의 용례상 이는 노아의 홍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혹자는 노아의 홍수에서는 하늘이 심판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꽤나 합리적인 말이다.

 

베드로후서 3:6-7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 그러나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으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니라.

 

여기서는 이전에 있던 세상과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이 대칭구조를 이룬다. 그렇다면 세상의 용례 자체가 하늘들과 땅이라는 것이고 그 세상에 용례에 따라 베드로후서 2장에서 노아의 때에 세상이 멸망했다면 하늘들까지 심판을 받았을 수 있다. 아마 그런 이유로 하늘에 사는 새들도 방주에 태웠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용례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 보았지만 성경적인 답변은 아니었기에 따로 기술하지 않는다. 

 

결론 

 

이 모든 것을 보았을 때 베드로후서 3장에 있는 내용이 노아의 홍수라면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우주적 홍수라면 4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이것으로 인해 필자는 이것이 노아의 홍수임을 확신한다. 게다가 이것이 우주적 홍수라는 증거를 거의 다 종합해 보았을 때 마땅히 성경적 근거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주적 홍수와 헷갈리지 말라고 힌트를 여러차례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는 이에 있어 성경의 단복수 차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거나 성경을 조금 흐릿하게 보자는 식의 모든 입장은 가볍게 무시할 것이다. 더 나은 성경적 반박이 없는 이상 이 입장을 유지할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하나님께서 이것이 우주적 홍수였다고 하시면 필자는 같은 논지로 필자를 변호할 것이다. 성경대로 믿는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겠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것이 노아의 홍수라고 한다면 도대체 뭐라고 반박하겠는가? 창세기 1:1의 하늘은 창조의 관한 일반적인 진술이라고 하겠는가? 아니면 그렇게 어렵게 보지 말고 성경을 조금 흐릿하게 보자고 하겠는가? 아니면 럭크만이 그렇게 주장했다며 자신을 변호하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이 부분을 럭크만과 필자가 반대로 설명할 때 필자가 반박한 논리로 그대로 우주적 홍수라는 필자를 반박하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의 기초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를 잘 돌아보아야 한다.

 

베드로후서 1:19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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